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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하고 찬란하신 도깨비

tvN드라마 / 총 16부작 / 연출 : 이응복, 극본 : 김은숙 작가

드디어 도깨비를 다 봤습니다. 

전에 제가 쓴 도깨비 12화에 관한 내용이 있습니다. 정말이지 보는 내내 눈물과 감동과 웃음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이토록 아름다운 드라마는 못난이 주의보 다음으로 본 거 같습니다. 아픔답고 로맨틱하면서 기품이 넘치는 드라마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도깨비가 끝나고 배우들에 대한 관심 뿐만 아니라 배우의 대사, OST, 소품 등으로 인터넷을 뜨겁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가끔 PPL도 훅 나오긴 했지만, 웃음으로 드라마 속 상황과 잘 녹아들었으며, 미친 연출력에 박수를 보내드립니다. 이렇게 가슴 뜨겁게 드라마를 본 건 정말이지 오랜만이라 감사드립니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제가 더욱 유심히 보고 감정을 몰입 했던 건 인간의 업 業, 연 緣, 사 死에 대한 에피소드들이었습니다. 현실 속에서 선한 사람들의 수호신 역할을 해주었던 도깨비 김신(공유)의 선행들과, 이승을 떠나지 못하고 떠도는 망자들의 한을 풀어주었던 지은탁(김고은)의 행동들, 방금 죽음을 맞이한 사람들이 이승과 이별하는 순간을 기품있고 인간적으로 맞이해주는 저승사자(이동욱). 이분들이 보여준 것은 우리 인간의 삶을 대하는 정중하고 따뜻한 시선과 눈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주인공들은 저주와 각인으로 고통받은 삶을 보내야 했죠. 고려 충신이었던 김신이 죽지 못해 도깨비가 되어 도깨비신부를 기다려야 했던 것, 스스로 생을 버려 왕여가 기억을 잃은 채 저승사자가 되어 망자들을 인도하는 일을 하게 된 것, 지은탁이 도깨비신부가 될 운명을 지닌 채 기적처럼 세상에 태어난 것 등 이들에게 지워진 운명과 과업은 인간사가 아닌 신의 영역에서 결정되고 이루어진 일로 묘사가 됩니다. 그래서 주인공들은 종종 신에게 질문, 원망, 소망, 용서를 구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죠. 신과 삼신할머니를 등장시켜 인간의 질문에 답을 하는 장면도 보여주는데 결과는 '답을 스스로 구하라'였죠. 

'도대체 내게 왜'라는 질문으로 고민하는 주인공들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신의 소행, 혹은 장난인 듯 골던 이 드라마는 마지막에 다다라서야 신의 한계를 증명합니다. 신이 관장할 수 없는 '인간의 선택과 예측 불가능성'의 가치를 보여준 것이죠. 써니(유인나)는 자신의 기억이 지워지길 거부한 채 스스로 외로움을 견지며 살았고 지은탁(김고은)은 본능적으로 위험에 처한 아이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던졌습니다. 전 이 장면에서 아주 그냥 펑펑 울었습니다. 이들은 신에게 의지하거나 질문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을 내렸고, 그 선택의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것은 등장인물들의 희생과 이별로 비쳐 당장은 슬픈 결말처럼 보이지만 결국 오랜 시간을 돌아 행복한 결말로 마무리되는 결말로 되죠. 이번 생이 아니더라도 행복해질 사람은 언젠간 행복해지고야 만다는 말입니다. 인간의 '업', '연', '사'를 뛰어넘어 결국에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고 마는 것이 이 드라마가 얘기하고 있죠. 

"당신이 세상에서 멀어질 때, 누군가 세상 쪽으로 등 떠밀어 준다면 그건 신이 당신 곁에 머물다 간 순간이다"

정말이지 많은 명대사가 있었지만 제일 기억에 남는 명대사입니다. 신은 있고 없고, 내게 선의를 베푸는 그 누구도 잠시 내게 '신'일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문장이죠. 신은 딱 그 정도만 인간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이니 나머지 답은 인간이 스스로 찾아가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에게 묻거나 원망하거나 바라기 이전에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늘 오늘이 마지막처럼 살고 사랑해야 한다는 얘기이죠. 도깨비는 우리 삶에 맥락 없이 일어나는 많은 불행에 그렇게 맞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깨비를 통해서 그저 예쁜 남녀의 로맨스를 지켜보는 것을 넘어 그것을 둘러싼 더욱 커다한 우리의 삶과 죽음에 대한 애정을 돌아보는 소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실로 따스하고 가슴 묵직해지는 깨달음과 기억, 그것이 김은숙 작가가 도깨비를 통해 주는 선물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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